생방송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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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2부예배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2022-02-20 2,926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자신의 형상의 모양을 따라 인간도 지으셨으니
인간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축복으로 주신 천지 만물로 살아가고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절대적인 생명의 법을 주신 것이다(마4:3~4).
그러므로 인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영육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인격과 같은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으니
곧 지성과 감성과 의지로 살아가도록 지으신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지성적 기능인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지성이 작용하는 순간부터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향한 감성의 기능으로
감사와 찬양과 예배를 통하여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충성도 섬김도 공경과 경외함도 표출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감성으로 나타난 행동은 바로
감성과 함께 나타나는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생활은
은혜 베푸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거룩한 행동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롬1:18~23).
이것은 전인격적인 타락이요,
곧 죽음인 것이다(창2:16~17, 창3:17~19)
인간은 마귀의 궤계에 의해 배은망덕하며
영원히 죽을죄를 범하고
참혹한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피치 못할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피 흘려 죽게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히 살게 하려 하심이셨다(요3:16, 빌2:5~8, 사53:5~6).
우리가 지금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은망덕하여
죄 아래서 참혹한 지옥 형벌을 받을 자신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신앙고백의 증거인 것이다.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예배가 예배가 되지 못하여 불충하다면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실이 거의 없는 사람일 것이다.
구원받은 자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것은
인격적으로 너무도 확실한 감사의 표현이요,
인격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행위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의 생명의 피를 쏟아 하나님 아버지께 속죄의 제물로 드림으로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의 처절한 형벌에서
구원하여 주셨다고 하는 최고의 거룩한 고백인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자라면
당연히 자기 자신을 예배의 제물 되게 하여
감사로 드림이 마땅한 것이다(요4:23~24, 롬12:1~2).
이와 같이 마땅한 예배를 마땅하게 실천하지 않는
외식적인 예배는 그저 종교적인 행위일 뿐이다.
구약시대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생명으로
속죄의 은혜를 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창조자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 순종하였다.
또한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번제로 드려서 절대 순종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곧 번제의 제사를
자신의 독자 이삭의 목숨을 초월할 만큼 크게 여겼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속죄의 제물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정하시고
독생자의 절규를 외면하면서까지 실천하셨으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곧 예배가
독생자를 초월할 만큼
얼마나 큰 것인가 생각해 보라(창22:2~4, 마26:42, 히9:11~1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나를 구원하신 예배의 요구는
구원의 주님께 기도와 말씀의 순종과 충성과 전도와 순교의 제물로
자신의 몸을 다 드려 예배하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이 그랬고
초대교회가 구원의 주님 앞에 모든 제물도 목숨도
예배의 제물로 아낌없이 다 드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진정한 예배의 요구는
구원받은 자들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게 하라는 요구인 것이다(롬12:1).
구원의 주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는
독자보다 크고 경이롭고 보배로운 것이며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애착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초월하여
구원의 주님께만 자신을 바쳐 드리는 삶이 곧 예배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자라면
자신의 생애에서 구원의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보다 큰 것은
천지간에 하나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당신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확실하게 구원받은 자인가?
구원받은 자로서
주님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셔서 나를 구원하셨듯이
나도 나의 모든 것인 목숨을 다 주께 드려
구원의 주님을 기쁘시게 예배하고 있는가?
구약시대에는 비록 짐승의 피로 제사할지라도
제사의 실패자는 제사장이라도 현장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예배하는 자가
자신의 평생에 예배를 실패한다면
그는 결단코 절망적인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자.
나의 몸을 산 제사로 드려 예배하자.
내 평생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자.
나의 영혼의 때를 위하여
오직 구원의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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