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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

2010-10-10 6,355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신 조물주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창조하시고 기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번성케 하시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멸망하는 인간의 구원주가 되시어
자신의 피를 쏟아 우리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약1:18).
이스라엘은 택함을 받았으나 우리는 아들의 피를 쏟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으니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요1:12).
하나님은 이 같은 큰 은혜를 베푸시려고 아들을 보내셨고
이는 죄인된 인류가 환영해야 할 최상의 기업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의 죽음 곧 죄의 도말이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섭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요
우리에게는 믿음이며 마귀와 죄에게는 영원한 파멸을 선고하는 것이다.
세상은 어두움에 속하여 이 엄청난 사실을 알지 못하나
믿음에 있는 우리는 능히 알고 이 복을 누리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속했다는 증거다(요14:16-17).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자가 믿음에 있는 자요
믿음에 있는 자만이 구원을 얻은 자요 부활의 능력을 가진 자다.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생명의 기업을 알지 못하여 세상에 속하고
어두움에 속하여 방황하는 자에게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요 성령의 역사다.
하나님은 사랑의 섭리를 나타내시고 예수는 사랑의 섭리를 성취하시고
성령은 사랑의 섭리를 땅 끝까지 전파하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성령과 함께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불신자가 있는 한 전해야 한다.
사랑은 멸망과 파멸을 절대로 방관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도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멸망을 절대 방관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다.
사랑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니 아들을 아끼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제자들이 불신자의 영혼을 사랑하니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것처럼
사랑은 절대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사용한다.
이것이 영적인 사랑이요 진실한 사랑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박애주의가 아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예수의 사랑을 그들도 받고 누리게 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던지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사랑이다.
누가 이 사랑을 막을 수 있는가? 아무도 막을 수 없고 아무도 제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같은 사랑을 이웃을 향해 단 한 번이라도 해보았는가?
바빠서 전도 못 한다고 힘들어서 못 한다고 한다면 얼마나 주님이 실망하시겠는가?
예수님은 제자에게 전도라는 사명을 맡겨주셨고 제자들은 초대교인들에게 맡겨주었으며
이제는 우리에게 맡기고 그들은 먼저 사라져갔다.
우리도 부지런히 전하다가 우리가 전도한 그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맡기고 하늘나라에 가야한다.
이것이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땅 끝까지 이르러 이루어질 일이다.
그런데 왜 죄와 저주와 고통으로 인해 멸망하는 인간들에게
이같이 값지고 귀한 소식을 전하는 일을 우리는 방관하고 있는가? 왜 힘쓰지 않는가?
그만큼 내가 받은 구원을 실감하지 못하고 이웃이 오늘 죽으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한다는 영적인 현실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자도 죽을 각오하고 뛰어 들어가서 건져내고
불에 타 죽는 자도 죽을 각오하고 뛰어 들어가서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와 같이 복음 전도를 죽을 각오하고 ‘나는 구원받았으니 죽어도 좋다 그러나 너는 살아야 된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이요 이것이 전도 정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귀한 소식을 전하는 일에 한 사람도 방관하지 말고
내 목숨 다 할 때까지 인생 다하는 순간까지 목숨을 투자해야 한다.
욕 좀 먹으면 어떤가? 무시당하면 어떤가?
무시하는 사람은 무시하고 욕하는 사람은 욕할지라도
백 명 중 한 명이라도 예수 믿을 사람이 있다면 건져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은 복음을 환영하지 않는다. 지옥 간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의 멸망과 자기의 죄악과 자기의 저주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서 죽인 사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먹다 살다 죽으면 그만인 줄 알고
혹시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내가 세상에서 무슨 잘못이 있기에 지옥가야 되느냐고 하면서
자기 스스로 윤리나 도덕적인 구원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부터 제자들과 초대교회의 수많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잔인한 핍박을 받으며 죽음으로 최후를 마치는 과정에 이르는 것이 복음전도다.
전도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고 성령이 전도할 수 있도록 감화와 감동을 하셔야 한다.
감화는 하고 싶은 마음이요 감동은 행동하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감화와 감동을 통해서 성령이 마음대로 나를 쓸 수 있는
성령의 일꾼임을 말해주고 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인들을 감동케 하셔서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멸망하는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복음을 강권적으로 전하게 하셨으니
복음은 어떠한 핍박을 받을지라도 전해야 하는 우리 주님의 최후의 지상 명령이요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성령의 이끌림이다.
핍박이 있는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요일4:5-6).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는 것은 자기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미혹하는 악한 영들 때문이다.
우리는 이 악한 영들을 파괴하고 몰아낼 권세를 가지고 전도해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여 권능을 받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미혹하는 세상의 영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가는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 어찌할꼬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힘은
세상이 미혹하는 미혹의 영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다 성령 충만해서 불신자들에게 역사하는 미혹의 영들이 떠날만한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권능을 받는 전도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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