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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2부예배

하나님의 구령의 열정

2010-10-17 5,846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양심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양심은 인간이 죗값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질병과 저주로 고통당하고
그 영혼이 참혹한 지옥 형벌을 피치 못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어
자기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잔인하게 못 박아 죽이기까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간을 살리시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여 멸망에서 구원하고
땅 끝까지 이 복음이 전파되어 수많은 영혼이 살기를 바라셨으니
이것이 기독교 최고의 윤리요 생명의 윤리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이처럼’ 이란 말은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달려 죽이기까지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복음전도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절규했다.
그 잔은 곧 인간을 사랑하심으로 당할 고난과 매 맞음과 저주와 죽음이다.
하나님은 독자의 최후의 절규를 뿌리치고 인간의 죄를 아들에게 담당하게 하시고
참혹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시기까지 멸망하는 영혼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우리는 왜 멸망하는 영혼에 관심이 없는가? 이것이 타락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의 나에 대한 관심사
곧 나를 위해 매 맞고 저주받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찢어서
내 살을 받아먹어라 내 피를 받아 마시라고 하신
아버지와 아들의 관심사가 내 속에서 이웃에 대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전도할 힘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을 살리고자 하는 힘이 하나님 아버지께 있고
아버지의 그 힘이 아들에게 전달되고
아들의 힘이 성령에 의해서 초대 교인들에게 전달되고
그 힘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중단 없이 전달되어
유유히 여기까지 전파되었다면 나에게서 전도가 중단되게 할 수는 없다.
자기 때문에 전도가 중단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에스겔서 33장을 보면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고 했다(겔33:8).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주여 기독교의 정신 하나님의 정신 아들의 정신이 내게서 그대로 재현되게 하옵소서!
전도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구원받아 지옥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품속에서 아들을 끄집어내서 십자가에 못 박고 인간을 살리듯이
우리 속에서 저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심정이 넘쳐나서
자기를 끌고 가서 그를 예수 믿고 구원받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기독교의 정신은 싸매두는 것이 아니라 폭발되어 터져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바울처럼 전도에 미쳐야 할 수 있다(행14:19-21; 20:23-24). .
하나님은 자기 손으로 만든 피조물인 인간이 영원히 지옥가게 되었을 때
아들을 보내서 죽여서 살렸으니 이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해가 안 갈 일을 하실 만큼 우리가 지옥에서 나오기를 바라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지옥 가는 이웃 멸망하는 이웃이 있는데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전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잔인한 사람이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이 지구상에서 최고 잔인한 사람이다.
우리는 잔인성을 내던지고 멸망하는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기로 작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전도한 사람은 내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지옥에서 완전히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전도다.
성령께서 마가다락방에 임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구원의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동일한 열정을 그들은 나타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 외딴 도시에서 예수 복음을 전하다가 참수형을 당했다.
우리의 전도는 언제든지 매를 맞고 핍박을 당하고 오해를 당해도
주님이 나 위해 죽은 것과 비교가 되랴 하는 이 정신으로 해야 한다.
다음 주일은 이웃초청 총력전도주일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꼭 한 사람 전도해서 살려야겠다는 정신이
우리 속에서 살아 약동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고장 난 것이다.
내가 구령의 열정이 불탈 때 하나님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구령의 열정이 식어지면 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도 식어진다.
마태복음 25장에 작은 소자에게 하지 않은 그것이 곧 주께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곧 이웃에게 전도하지 않는 것이 주님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서 전도했는데
하나님은 아들을 죽이기까지 전도를 마쳤는데
우리가 이 소식을 전해주지 않아서 수많은 사람이 멸망한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두시겠는가? 주님의 최고의 관심은 전도에 있다.
주여 내가 평생 사는 동안 주님의 관심 속에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제자들은 모두가 다 전도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오늘날 한국은 전도하는 자를 죽이지도 않고 가로막지도 않고
옥에 가두지도 않는데 왜 전도하지 않는가?
이것은 그만큼 내 속에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신 전도의 열정
아들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전도의 열정 제자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최후에 순교로 숨을 거둘 때까지 한 전도의 열정이 우리 속에는 없기 때문이다.
나 하나만 구원받고 말자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나만 구원받고 마는 근성을 버리고 나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복음 전도의 가지가 가지에서 가지로 계속 뻗어 열매를 맺기 바란다.
예수께서 지구상에서 그 무엇을 위해서도 목숨을 바치라고 말하지 않았으나
전도를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으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도를 통해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사람들의 심령을 찾아가신다.
우리는 주님이 가야할 장소를 계속 전도로 만들어야 한다.
전도하지 않으면 주님이 갈 곳이 없다.
주님은 이웃초청 총력전도주일을 베푸시고
우리의 손길을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시길 기다리신다.
주님은 몸부림치고 애절하게 기다리시는데 우리가 혼자 올 때 얼마나 실망하시겠는가?
‘나는 피 흘려 몸 버려 내 피와 살을 네게 주었건만 너는 혼자 오느냐’고 물으시는 주님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지 않도록 ‘나는 죽어도 너는 살아야 된다’는 전도의 정신
구령의 정신 예수의 특성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그들의 영혼을 죄에서 저주에서 영원한 지옥의 멸망에서 살려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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