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일정

새벽예배 매일 새벽 5:10

주일1부예배 주일 오전 7:50

주일2부예배 주일 오전 9:50

주일3부 청년연합예배 주일 오후 12:50

주일4부예배 주일 오후 3:50

삼일1부예배 수요일 오후 2:30

삼일2부예배 수요일 밤 7:10

금요철야예배 금요일 밤 8:10

지금은 생방송 중이 아닙니다.

주일2부예배

내게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2021-01-10 4,479

[렘 29:10~14]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자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의 생사화복을
자유하게 주관하시는 전지하고 전능한 분이시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을 함부로 대우하지 아니하시고
창조자가 준 인격을 자유하게 사용하며 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인간이 절대 멸망하지 않는 선에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창조주인 자신에게 무엇이든 아뢸 수 있는
대화의 상대로 지으셨으니
곧 인간의 일만 가지 사정을
전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고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해 간구하는 인간의 기도는
인생에게 닥친 영육 간의 불가능을
하나님의 전능하신 절대 능력으로 해결해 주시려는
축복의 수단으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는 아쉬움이 전혀 없으시나
하나님 자신이 창조한 인간을 도우시려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의 수단으로 주신 것이 기도다(렘29:12~13).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최고의 교제이며
최고의 것을 조달받는 축복 중에 절대적 축복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먼저 요청한 것이 아니요,
인간의 아쉬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먼저 도와주겠다고 요구한 것이다.
또 기도는 언제나 어디서나
영육 간의 어떠한 문제라도 구할 수 있으며
횟수에 제한 없이 간구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꾸짖거나 무관심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으니
은혜 중에 은혜다(살전5:17).
그것도 모자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이름, 곧 자신의 명예를 기꺼이 주시면서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리라 하셨다(요14:13~14).
기도 응답은 인간에게 닥친 영육 간의 불가능을
현장에서 해결하는 새로운 창조요,
응답하시는 하나님과 응답받는 인간과의 믿음의 절대 조화다.
누구든지 무엇을 구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현장에서 응답하셨다(마8:1~3, 막10:46~52).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자연 질서에 모순을 일으켜서라도 기어이 이루어 낸다(약5:13~18).
기도 응답은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증거다.
기도는 나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도록
주님을 일하시게 하는,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능력이다.
누가 감히 전지전능하신 창조자를 일하시게 하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믿고 구하는 자들의 간구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다(마7:7).
그러므로 기도는 허공 치듯 듣지 않는 신에게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구하는 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분에게
약속을 가진 자가 그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믿음 있는 자의 권리다.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절대 낙망치 말라 말씀하셨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응답하신다고 하는
믿음을 주신 것이다(눅18:1~8).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기도하자.
주님은 당신이 짊어진 불가능의 고통을 기도로 가져오라 하신다.
기도하라 하심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주님께서
나의 불가능의 고통을 해결해 주겠다고 하시는 요구요, 재촉이다.
바디메오도 그리했고, 수로보니게 여인도 그리했다(마15:21~28).
기도는 전투를 방불케 하는 현장이다.
기도하는 자가 응답을 받으면 살고
응답을 못 받으면
고통과 그냥 동거하며 살아가다가 결국엔 죽고야 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만 가지 사정을 다 아신다.
그러나 기도하는 자의 사정에만 개입하시고
‘구하라 주겠다’ 하신 기도 약속을 응답으로 이행하신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생활의 고통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칠십 년간 침묵하셨다.
하나님의 침묵은
칠십년간 이어진 포로생활의 고역을 해결해 주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기 바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의 사정을 다 듣고 계시고, 다 알고 계셨지만
선지자를 보내셔서 기도하라 말씀하셨다(렘29:11~14).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기도응답 약속은 확실하다.
엘리야처럼, 가나안 여인처럼, 바디메오처럼,
누가복음 18장에서 주가 말씀하신 과부처럼
기도하자. 그리고 응답받자.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자유하자.
기도는 응답의 약속을 가진 자들의 기업이다.
주님은 귀 기울이고 당신의 기도를 들으신다.
지금 응답하시려고 말이다.

이전 글
다음 글

아이디 로그인

소셜 로그인